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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사천 늑도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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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천문화원 댓글 0건 조회 4,663회 작성일 04-03-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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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제 450호
- 소재지 : 늑도동 일원
- 지정일자 : 2003년 6월 23일
- 규모 : 157,904㎡
 
늑도패총은 1985년 1월 14일 지정면적 34,159㎡로 경상남도지정 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6월 23일 지정면적 157,904㎡, 보호구역 89,407㎡ 총 247,311㎡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50호 사천 늑도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늑도는 삼천포항의 서쪽에 위치한 남해군 창선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섬으로, 길이가 970m, 너비가 720m, 면적이 46㏊(0.56㎢)인 작은 섬인데, 섬의 남쪽과 북쪽에는 큰섬산과 작은섬산으로 불리는 해발 90m와 60m의 봉우리들이 있고 양봉우리 사이는 비교적 평탄면을 이루며 연결되는 안부(鞍部)를 위시하여 섬 일원에 커다란 패총(貝塚)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늑도유적은 1979년 부산대학교박물관이 지표조사를 통해 학계에 알려진 후, 1985년 10월 1일부터 40일간에 걸친 1차 발굴조사에 이어 1986년 5월 19일부터 30일간에 걸친 2차 발굴조사를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이 때의 발굴에서는 초기 철기시대인 B.C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주거지 11동(棟)과 무덤 73기(基)[옹관묘 35기(유아, 소아 매장), 토광묘 38기(성인 매장)]가 확인되었으며 바리형 민무늬토기, 덧띠토기, 민무늬 항아리 등 12점과 숫돌 2점, 사슴뿔 2개 등이 출토되었다.
이곳의 움집들은 약 150㎡ 범위에 밀집되어 있어 대부분이 아래위로 겹쳐 있는데 구릉(丘陵)의 사면(斜面) 아래쪽에서 점차 위로 옮겨가면서 집터를 마련해 나간 것 같다. 또한 이 유적에서 당시의 생활방식이 농경, 어로, 수렵의 수단에 의존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50년대까지도 이 고장에 있었던 애기장(葬 : 어린아이가 죽으면 아무런 격식도 없이 땅속에 관을 묻는 것)이 아득한 옛날부터의 유습(遺習)과 습속(習俗)으로 끈질기게 이어져 온 흐름에 새삼 놀라게 된다.
3차 발굴조사는 1998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하는 남해 창선도와 대방동 간의 국도3호선 구간을 연결하는 연육교 설치계획에 따라 부산대학교 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경남고고학연구소 등 3개 기관이 구역을 나누어서 1998년 5월 19일∼12월 31일의 154일간, 1999년11월 22일∼2000년 12월 20일의 319일간(1999년도에 41일간, 2000년도에 278일간), 2001년 5월 14일∼11월 24일 195일간 3차에 걸쳐 총668일간의 합동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1998년부터 3년간의 발굴조사에서 주거지, 분묘, 토취장, 토기소성가마터, 패총 등의 유구 확인. 토기, 석기, 철기, 청동기 등의 인공유물과 인골, 개뼈, 사슴뼈와 뿔, 조개류, 어골류, 쌀보리의 곡물류 등의 자연유물 수만점 출토. 특히 원형수혈주거지의 온돌시설, 토광묘에 부장된 인골과 개뼈, 패각층의 반량전, 오수전 등의 중국화폐, 야요이계와 낙랑계 토기 등의 발견으로 역사상으로 매우 주목되는 곳으로 부각되고 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된 결과로 볼 때 이 유적은 섬 전체가 청동기시대에서 삼한시대로 이어지는 단계의 삼각형점토대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유적으로서 신석기시대의 유물부터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까지의 유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선사시대의 많은 주거지 등 생활관련 유물과 낙랑관련 유물 및 일본관련 유물 등 외래계 유물들이 대량 출토되어 활발한 대외교역과 중개지로서의 기능을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학계에서는 각종 유구와 유물로 보아 삼한시대 문화상의 연구, 당시 한·중·일 간의 관계 교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로 평가되어 국정교과서에서도 실려 있으며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전시관건립을 촉구하게 되어 늑도 패총에서 출토된 인골, 동물유체, 석기, 토기, 철기 등 13,000여점 가운데 전시 가능한 유물 2,000여점을 선별하여 전시·연구용으로 활용 계획으로 있고 출토유물을 통한 삼한시대 남해안의 사회상과 문화상은 물론,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한·중·일 문화교류 관계의 연구산실로 활용할 계획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2-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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