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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자료] 구계서원
     작성자 : 사천문화원
    Date : 2004-03-11 17:48  |  Hit : 3,474  

    - 지정번호 : 제 40 호
    - 소재지 : 사천읍 구암리 산 43번지
    - 지정일자 : 1983년 8월 11일
    - 규모 : 3,967㎡
     
    구계서원은 사천읍 구암리 만죽산(萬竹山)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향교가 고려시대부터 조선에 계승된 지방의 공공교육기관(公共敎育機關)이라 한다면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에 보급된 지방의 사학기관(私學機關)으로서 유현(儒賢)의 위패를 모시고 유림(유핟자)들의 학문을 장려한 기관이라 하겠다.

    조선시대는 건국초부터 육영(育英)에 힘을 써 고려시대의 사원(寺院)을 대신하여 서재(書齋), 서당(書堂), 정사(精舍), 선현사(先賢祠) 등을 장려하였다.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곤양군수를 지낸 바 있음)이 순흥(順興)에서 고려시대의 학자 안향(安珦:安裕)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이듬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한 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서원이었다. 이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액(額)을 하사 받아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임금이 이름을 지어 하사된 서원)이 되었으며, 또한 황폐되어 가던 향교를 대신하여 국가의 보조를 받는 사원이 각처에 설치되었다. 이상으로 살핀 바와같이 구계서원은 명종 때 높은 벼슬을 두루 거친 문신(문관인 신하)이자 학자인 구암(龜巖) 이정(李楨)선생을 기리고 향사(享祀:제사를 지냄)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처음은 이정선생이 별세한지 40년 만인 광해군 3년(1611)에 유도(儒道)를 닦는 학자들과 고향의 마을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향리인 만죽산 아래에 구산사(龜山祠)란 사당을 지었다.

    이후 인조(仁祖) 23년(1645) 4월에는 사천 사림(유학자)들의 소청(疏請:임금에게 알리어 창함)으로 나라에서 구계(龜溪)라는 액호가 내려 이때부터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로부터 190여년이 지난 고종 5년(1868), 대원군(大院君:고종의 아버지)이 섭정(攝政:임금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림)하자 전국에서 사표가 되는 47개의 사액서원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미흡한 사액서원은 모두 훼철(철폐) 당했다. 그러다가 60여 년이 지난 1931년 봄에, 대관대유계(大觀臺儒契)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서 서원이 복건(復建)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3년 12월에 사단법인체로 등록되고 이어 1983년 8월 6일에 도지정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원에는 이정선생과 대사헌(大司憲)의 벼슬을 지낸 성옹(醒翁) 김덕함(金德?)선생 두 분의 위패를 모셔 놓은 묘당(사당)과 뜰 아래에는 구산사비를 비롯하여 김덕함, 최관(崔瓘) 두 선생의 기적비(紀績碑)가 나란이 서 있고, 또 내삼문(금기문) 밖에는 동재.서재.풍영루등의 건물이 있다. 그리고 구산사비에 새겨 놓은 비명(碑銘)은 숙종 때 우의정(右議政)을 지낸 바 있는 양천(楊川)사람 미수 허목(許穆)이 지었다. 명(銘)에 가로되 ‘명(冥)은 물에 근심하였기에 제사하며, 용(龍)은 땅에 근실하였기에 제사하노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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