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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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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천문화원 댓글 0건 조회 4,348회 작성일 04-05-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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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사는 1300년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선대사(의상대사의 속세 형제)가 백천사를 처음 창건한것으로 전해 지고 있습니다.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된 백천사가 있는 와룡산에는 옛날의 절터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구전(口傳)되는 전설로 와룡산에는 팔만구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찰(寺刹)이 이 산속에 들어 앉아 있었음을알수 있습니다.

진양지(晋陽誌)등에 나오는 백천사(白泉寺)의 기록에는『백천사는 와룡산의 서편에 있었다. 도솔암에서 흘러내리는 동쪽 계곡은 양구택, 조황담, 백련폭이 그중 아름다운 곳이요. 선정암에서 흘러 내리는 절의 서쪽 계곡은 세심정, 무금대등의 좋은 경치가 있고 동서계곡의 상하에 물레방아 16개소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뒤에는 12개만 남았다. 묵계암도 백천사 북쪽 10리에 있었다.』하는 것으로 보아 대충 백천사의 위치를 가늠해 볼수가 있을뿐 아니라 백천계곡의 경관마저 짐작이 됩니다.

이 절터 부근에는 축을 쌓은 돌담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뿐 아니라 석기(石器)등 기왓장이 부서진채 널려 있는 것을 새롭게 재건축하여 구국도량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구국 도량으로써의 백운동은 임진왜란때 사명대사께서 승병(僧兵)들과함께 왜군과 싸워서 물리쳤다는 기록도 전해오는 곳입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수륙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진두 지휘를 하셨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백운동 골짜기에서 바라보는 와룡산 등성이 일대에 파병산, 퇴병산, 난곡, 성문등 등 임진왜란의 전란과 관련되는 명칭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수가 있습니다.

빼어난 주위경관, 구국도량으로써의 역할, 오랫동안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왔었던 백천사의 옛터위에 다시 재건축되어지는 백천사는 수행자들의 참선 도량으로 적합할 것입니다.
(출처 : 백천사 홈페이지:  www.baekcheonsa.co.kr)

 
>> 문의처

055-834-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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