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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사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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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천문화원 댓글 0건 조회 4,179회 작성일 04-03-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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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제 220 호
- 소재지 : 사천읍 선인리 119번지
- 지정일자 : 1983년 8월 11일
- 규모 : 3,455㎡
 
사천향교는 사천읍 선인리 119번지 성전봉(聖殿峯)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당초의 향교터는 지금의 정동면 풍정리에 있었다고 전해오나 확실하지 않고 다만, 옛날의 고현지(古縣地)가 현 정동면 고읍리에 있었음을 감안할 때 추정이 가능할 뿐이다.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에 계승된 지방의 학교로서 오늘의 중 · 고둥학교에 해당된다. 일명 교궁(校宮) 또는 재궁(齋宮)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조에 이르러 교생을 가르치고 인재를 길러내기 위하여 부(府), 목(牧), 군(郡), 현(縣) 등 각 고을마다 1교(校)씩 이른바 대설위(大設位), 중설위(中設位), 소설위(小設位) 등의 3등급으로 나누어 큰 고을에는 교수 · 훈도 각 1명씩, 작은 고을에는 훈도만을 두었다. 위에서와 같이 사천향교는 ‘전학후묘형(前學後廟型)’의 소설위 향교로서 훈도(선생) 1명에 교생은 30명이었다.

다음 사천 향교의 내력을 살펴보면, 세종 3년(1421)에 향학당(鄕學堂) 창건을 시초(전학)로, 같은 왕 22년(1440)에 치성재(致誠齋) · 동서양재(東西兩齋) · 명륜당(明倫堂) 등을 짓고 (후묘) 향교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 후 세종 32년(1450)에는 풍화루(風火樓)를 지었으나 임진란 때 병화로 불타버리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금의 자리에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重修)를 거듭해오다가 1983년 8월 6일 도지정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성전(문묘)에는 공자(孔子)를 정위(正位)로 하여 안자(顔子), 자사(子思)는 동무(동편)에, 증자(曾子), 맹자(孟子)는 서무(서편)에 모두 5성(聖)을 모시고, 다음은 송조(宋朝) 2현(賢;유현)과 우리나라 18현도 서열에 따라 동과 서로 나누어 각각 10현씩 위패(位牌;묘당 · 정 등에 모셔두는 나무 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와같은 향교는 먼저 학당이 생긴 후 문묘가 다음으로 설치되었다는데, 조선 중기 이후의 향교는 과거의 준비장으로 되고 서원(書院)이 발흥(發興)하게 되자 점차 쇠퇴하여졌고, 고종(高宗) 31년(1894) 말에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향교는 완전히 이름만 남아 지금은 문묘를 향사(享祀:제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문묘향사와 건물관리를 위하여 전교(典敎:향교의 대표자)를 두고 있으며, 봄 ·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석전제(釋奠祭)라 하여 문묘제사를 지내고 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2-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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